내면일기/보고 듣기

나의 청춘, 당신의 청춘, 우리의 청춘은.

hi-tadpole 2011. 12. 26. 01:44

2011년 내 인생 최고의 기복이 존재한 해이다. 가장 행복한(?) 생일과 가장 비참한(!) 추석을 지나 가장 떨떠름한(...) 성탄절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내 개인의 고민, 그리고 나를 둘러싼 역사의 고민. 지금 그 두 고민이 조우했다.

올해 내 최고의 책은,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 최고의 드라마는 '뿌리깊은 나무'. 최고의 공연은 '뮤지컬 영웅'이었다.
최고, 라고 하는 게 뭐 블록버스터급 액션대작! 뭐 이런거라기 보다는(셋다 스케일이 크지만서도) 끙끙 앓으면서 석달은 그와 함께 줄다리기, 혹은 씨름하는 걸 의미한다.

장르를 초월한 이 세 작품은 공통점이 있다. '청춘'이라는.
솔직히 요즘 청춘은 육십살부터 뭐 이런 말이 있지만 그래도 청춘이란 10대 후반. 20대. 혹은 30대 초반. 이 정도 아닐까.
청춘이 푸르고 풋풋한 건 다른 때보다 가진 것은 없으나 열정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판단, 신념에 강하게 반응하고 실천하는 것.
나의 신념과 다를 때 과감히 이를 시정하고, 혹은 내 신념이 틀렸다 싶었을 때 과감히 내 신념을 고치는 것.

내 인생 발달 과업 중 이루지 못한, 배우자와 자녀가 있는 경우. 이 땐 이미 너무 가진 것이 많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킬 것이 많은 경우.
내 신념은 나도 모르는 사이 망부석처럼 굳어버릴 것이다.
(아닌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소시민이니까. 아마도 난 아마 그 때쯤이면 지킬 것들을 수호하느라 급급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밤은 노래한다, 영웅은 일제 강점기. 뿌리깊은 나무는 새 나라 조선의 태동기.
언제나 그렇지만 이 시기는 급변 그 자체다. 특히나 정의와 불의가 급격하게 부딪히던 시기.
그 급격한 파도 속에서 청춘을 보낸 몇몇의 이야기가 바로 내 마음의 블록버스터급 액션대작을 만들었다.

 > 밤은 노래한다. (표지의 이 남자 은근 매력있어.)

'밤은 노래한다'는 수능 이후 국사는 고대소설론, 시조가사론 같은 듣기만해도 졸린 고전 수업을 듣던 시절 이후 보지 않아서일까. 이름도 생소한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일제강점기, 서로 다른 철학으로, 관점으로 내 나라 대한제국을 독립시키려는 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다들 알겠지만 그 당시 독립투사들은 외교파 전쟁파 좌파 우파, 제자백가가 울고 갈만큼 엄청나게 다양한, 조직을 구성해서 활동한다.
(아... 기억나. 근현대사 외우다 심각하게, 아, 지금이라도 다시 이과를... 이라고 생각했었던 그때.)
지나친 비밀 결사가 부른 비극이랄까. 자신들의 동지를 죽이고 죽이던 그 당시. 그들의 고뇌. 그들은 내 나이 또래였다. 죽기를 결심하고 나라를 세우는 그들.
그들은 나와 비슷한 또래.


> 뮤지컬 영웅. 이거 듣는데 아 올해 안에 뭔가 애국해야할 것 같아, 란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영웅'은 정말 어쩌다 생긴 티켓인데다, 연말은 다가오는데 엄숙한 분위기일 것 같아 좀 보러 가면서도 내내 내키지 않았다.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이 아니었다면 갈 생각도 안했을 것이다. 물론 엄숙한 마무리였지만 화려한 무대 연출, 감초연기들이 정말 감초처럼 들어있어서 기대 이상이었다.
뮤지컬이 시작되자마자 내 마음에 쿵, 하고 박힌 건 다름아닌 서른 살 안중근이었다.
어린 시절 위인전의 안중근은 어른이었다. 스물여덟이 되어 본 서른 살 안중근은 한 때 내가 좋아했던 오빠의 나이보다 어렸다.
이미 안중근은 스물 여덟엔 일본과 맞서기로 결심하고 행동에 옮긴 다음이었다. 나에게 서른은 어떤 의미일까.
안중근의 서른과 내 서른, 고뇌시작.
(사족을 달자면 명성황후의 마지막 궁녀였던 설희 역을 맡았던 이상은씨. 목소리 들으면서 어, 저 여자 목소리 차라리 명성황후를 하는게 더 낫겠다. 궁녀라기엔 너무 비장해. 명성황후를 하면 더 어울리겠는데, 했는데 그녀는 내가 본 뮤지컬 명성황후의 명성황후 역을 맡았던 사람이었다. 내 귀 아직 안 죽었군.)


>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훗, 난 이 자랑스러운 한글을 중세어 강독시간에 죽도록 공부하고 저들이 사용했을 그 말을 형태소 분석, IC분석까지 한 여자야!라고 마음 속 깊이 외쳤던 시간.

"불휘기픈나무는바람에아니뮐쌔"의 그 뿌리깊은 나무. 용비어천가 중 문학적 의미가 가장 많은 장 중 하나. (참고로 용비어천가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한글 창제 후 가장 먼저 한글로 쓰인 악장이다.)

그건 그거고, 한글 창제의 처음과 끝에는 소이가 있었다. 물론, 가상의 인물이니까 그녀의 존재는 솔직히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아마도 나보다 어린 나이였을거다. 그리고 그녀는 글자따위 필요없어 라고 징징대는 채윤에게 난 내 인생을 글자에 걸었어!
글자의 힘을 알던 그녀는 사랑하는 그를 두고 궁으로 향할 때. 아 만약 이 사람 실존인물이라면 이 이사람이야 말로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명성황후 등등 그 어떤 역사 속 여인들보다 가장 훌륭한 여자가 아닐까. 란 생각을 했었다.
세종이 글자를 만들었지만 그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는 이루지 못했다.
그의 뜻을 따르는 이들 중에 소이처럼, 젊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공자님은 나이 서른에 뜻이 확고히 섰다며 '이립(而立)' 이라 하셨고, 예수님은 나이 서른에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나이 서른에 시작했다지만 이 분들은 그 전에 치열하게 고민했다. 어느 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후년이면 서른인 나는 꿈이 '자고 일어났는데 남편이랑 나는 출근 준비를 하고 애는 학교갈 준비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라는 심각하게 소박한 꿈을 꾸고 있다.
물론 일제강점기, 그리고 조선 초기의 그들도 꿈은 소박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가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았겠지.

하지만 난 이 세 작품을, 2011년 후반기에 맞으면서 나의 청춘 그리고 너의 청춘, 우리의 청춘은 그들의 청춘과 비견할만큼 파랗고 풋풋한 꿈을 꾸는지. 내 삶이 퍽퍽하다고 퍽퍽한 꿈을 꾸며 진짜 하나님이 주신 꿈은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고민했었다.

음. 생각보다 글이 별로군. 하지만 썼으니,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