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愛主義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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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일기/마음 듣기

이름.

hi-tadpole 2013. 7. 17. 22:14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각주:1]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존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행동이다. 수많은 존재 중 단 하나. 그것을 특정(特定)시켜주는 행동.

 

사람은 '분절'을 통해 존재를 인식한다.

빛을 분절해 그 중 가시광선을 통해 사물을 보고 있으며, 그것들을 인식하고 있다.

수많은 시간을 시, 분, 초로 나누었고. 수많은 음 중 40여 개의 음을 구분해서[각주:2] '한국어'를 만들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것들을 모두 분절한다. 분자, 원자... 나노까지.

그렇게 분절한 덕분에 나는 서른이라는 나이를 살아오는 동안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잘 살았다.

분절의 명료함이 많은 존재들을 발견하고, 정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문명의 발전을 이끌었지만.

글쎄. 그 명료함이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특별하고 묘한 이 기분을 너에게 얘기하면

 너는 또 이런저런 이름을 붙여 대겠지만

 난생 처음 느껴보는 이 감정에

 그리 쉽게 이름 붙여주진 않을래"[각주:3]

 

눈물이 맺히기 직전부터 눈물이 흐르는 그 순간을 슬픔이라고 부를 것인가.

분절을 통해 정의를 내리기에 내 감정은 너무나 애매하다.

리커트 척도[각주:4]로 기쁨과 슬픔의 그 어느 중간쯤에 있을 내 마음을 표시할 수 있을까?

아니, 기쁨이란 두 글자엔 기쁘기 위해 있었을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기엔 너무 작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기쁨이라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만큼 묘한 감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시계가 없는 세상의 사람들은

 약속을 할 때 이렇게 하지

 내일 아침 해가 저기 저 언덕 위에 걸쳐지면

 그때 만나자[각주:5]"

 

10초 차이로 지하철을 못타 회사의 지각의 여부가 나뉘는 이 세상에서,

약속시간 10분을 늦으면 날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게 분명해! 라고 생각해 헤어지는 이 세상에 비하면

노랫말은 얼마나 애매한가. 그 애매함 때문에 조금 늦더라도, 혹은 비가 와 만나지 못하더라도.

서로 실망할 일이 없다.

왜냐하면, 명확하지 않으니까. 아직, 아침해는 저기 저 언덕 위에 걸쳐지지 않았을 테니.

 

이름이란 수많은 그저 그런 대상 중 하나를 특정해서 특별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 특별함 때문에 정말 특별할지도 모르는 수많은 대상이 그냥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역설의 행동이다.

그래서 이르다, 이름.... 이 단어가 너무 매정해 보여 미워보이지만, 우리의 삶은 이름이 없다면, 무질서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그런 대상과 특별한 대상에 대한 양면, 그 이름의 양면 때문일까.

우린 10분이 늦어 이별하는 세상에 살면서도, 늘 애매하기 그지 없는 감정인 사랑을 하며 산다.

 

"시계도 숫자도 다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만나 사랑을 하지[각주:6]"

  1. 김춘수, 꽃. 중에서. [본문으로]
  2. 의미를 나눌 수 있는 가장 작은 음의 단위가 음운이다. 우리나라 말은 40여개 정도의 음운을 쓴다. [본문으로]
  3. 감정의 이름, 조준호. 중에서 [본문으로]
  4. 개인, 대상, 관념, 현상 등에 대한 개인의 태도나 성향의 강도를 측정하는 기법. 사회학사전, 고영복 편 중에서 [본문으로]
  5. 10분이 늦어 이별하는 세상, 백가영. 중에서 [본문으로]
  6. 10분이 늦어 이별하는 세상, 백가영. 중에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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